
[스포츠춘추=잠실]
"민석아, 라인업은 감독인 내가 아니라 네가 적는 거야.”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이 김민석에게 건넨 격려의 한마디가 현실이 됐다. 두산의 ‘잠실 제니’ 김민석이 721일 만의 화끈한 홈런포로 팀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며, 라인업 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새겨 넣었다.
두산은 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전에서 양의지와 제이크 케이브, 김민석의 홈런 3방을 앞세워 LG에 10대 8로 승리했다. 전날 역전패를 설욕하며 리그 선두 LG와의 시즌 상대 전적을 6승 7패로 만든 두산이다.

이날 두산의 최고 히어로는 단연 이적생 김민석이었다. 7회말 1루 대수비로 경기에 투입된 김민석은 7대 7로 팽팽하게 맞선 8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나섰다. 상대는 좌완 필승조 함덕주로, 이날 전까지 통산 4차례 맞대결에서 4번 모두 삼진당할 정도로 김민석의 천적이었다.
함덕주가 초구에 던진 슬라이더 가운데 몰리는 공에 김민석은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다. 높이 떠오른 타구는 그대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으로 이어지며 9대 7로 두산의 리드를 만들었다. 분위기를 탄 두산은 이어진 정수빈의 볼넷과 도루, 이유찬의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해 10대 7로 리드를 벌렸다. 9회 마무리 김택연이 1실점으로 LG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경기는 두산의 10대 8 승리로 끝났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민석은 홈런을 언제 쳐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민석의 홈런은 롯데 시절인 2023년 8월 16일 사직 SSG전에서 친 홈런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에는 홈런이 없었고, 트레이드로 두산에 이적한 뒤에도 이날 전까지 홈런이 없었다. 무려 721일 만에 나온 홈런이자 잠실 구장에서의 첫 홈런, 두산 이적 후 첫 홈런까지 여러 의미가 담긴 홈런이었다.
김민석은 “일단 대수비로 들어갔고 동점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위 타선으로 연결을 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갔다”며 “슬라이더를 생각하고 타석에 나갔는데, 운 좋게 타이밍이 잘 맞아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산 4타수 4삼진의 상대 함덕주에게 홈런을 친 소감에 대해 김민석은 “꿈인가 싶기도 하다"면서 "제가 홈런 타자가 아니다 보니, 내가 친 공이 슬라이더인지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갑작스러운 순간에 일어났다. 좀 현실성이 없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좌완투수 상대 첫 홈런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김민석은 “왼손 투수 상대로 올해 결과를 못 내고 있는데, 감독님께 나도 왼손 투수를 잘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왼손 투수를 상대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왼손 투수가 나오면 바뀌기도 했었다. 왼손 투수를 상대할 때 저만의 존을 설정해서 타격을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김민석은 프로에서 외야수로 시작했지만 두산에 온 뒤에는 두터운 외야 뎁스로 인해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에 조성환 감독대행은 김민석을 1루수로도 기용하며 어떻게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민석은 휘문고 시절 주로 유격수나 2루수, 외야수로 활약했고 1루수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해본 게 전부다.
이에 관해 김민석은 “조금은 부담도 되지만 감독님께서 저한테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감독님이 ‘민석아 라인업은 누가 적는 거야?’라고 물어보셔서 제가 ‘감독님이 적습니다’라고 했더니 ‘이제 너가 적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감독이 라인업을 쓸 때 생각나는 선수가 되게끔 좋은 활약을 보여달라는 의미의 격려였다.
김민석은 “항상 감독(대행)님이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도 많이 주시는데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크다”며 “부담감은 솔직히 그런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5할대 타율을 넘나들며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민석은 2023년 롯데에서 데뷔 시즌에도 고졸 신인으로는 많은 1군 경기에 출전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다소 정체기를 겪고 있다. 김민석은 “배트로 공을 친 뒤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며 “때문에 투수와 승부할 때 끈질기게, 악바리처럼 어떻게든 안 죽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단 얘기다.
그는 “타석에서 오래 머무르고,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간다”며 “감독님도 팀에서도 좀 머리를 '들이미는' 모습을 원한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패기 있게 하는 모습을 많이 주문하신다. 그런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면 결과는 알아서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