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 왼쪽), 2019 U-20 월드컵 골든볼(MVP) 수상자 이강인(사진=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 왼쪽), 2019 U-20 월드컵 골든볼(MVP) 수상자 이강인(사진=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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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분당]

2019년 6월. 한국은 축구로 들썩였다.

당시 한국 U-20 축구 대표팀은 폴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축구계 눈이 한 선수를 향했다. 이강인(21·레알 마요르카)이었다. 이강인은 18살에 참가한 2019 U-20 월드컵 7경기에서 2골 4도움을 기록했다. 

이강인은 2019 U-20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이 대회 포함 22차례 U-20 월드컵에서 18살 선수가 골든볼을 받은 8번째 사례다. 이강인은 전설 중의 전설 고(故) 디에고 마라도나(1979 U-20 월드컵 골든볼), 리오넬 메시(2005)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이강인이 2019 U-20 월드컵 이후 얼마만큼 성장했느냔 것.

이강인은 2021-2022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부) 29경기(선발 15)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2018-2019시즌 라리가 데뷔 후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이강인은 최근 라리가 14경기에서 평균 28.4분 뛰었다. 70분 이상 뛴 건 1월 3일 FC 바르셀로나전이 마지막이다. 

스포츠춘추가 이강인을 비롯한 유망주의 성장에 관한 황 감독의 생각을 들어봤다. 


“기본기 탄탄한 선수 늘었지만 자기만의 색깔 부족한 건 아쉬워”

2013년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포항 스틸러스의 더블(K리그1+FA컵 우승)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사진=포항 스틸러스)
2013년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포항 스틸러스의 더블(K리그1+FA컵 우승)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사진=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 시절이었던 2013시즌 더블(K리그1+FA컵 우승)을 일궜습니다.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일군 성과였습니다. K리그에서 유일무이한 역사죠. 그 중심에 섰던 게 이명주, 김승대, 고무열 등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였습니다. 지금은 한국 U-23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데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유망주는 계속 늘고 있습니까.

기본기가 아주 탄탄해요. 능력 있는 선수가 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자기만의 뚜렷한 색깔이 없다는 거예요. 벼락같은 슈팅이라던가 탁월한 위치 선정에 이은 헤더 같은 것이죠. 박경훈 선배나 변병주 선배처럼 번개같이 빠른 선수도 찾아보기 어렵고요. 

축구인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기량은 좋아졌는데 자기만의 뚜렷한 강점이 없다는 거죠. 원인이 무엇입니까. 

많은 지도자가 FC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시티처럼 축구 하길 원해요. 공을 오랜 시간 소유하면서 상대를 압박해가는 축구죠. 짧고 빠른 패스가 핵심이고요. 한국은 과거 속도와 힘이 강점이었습니다. 부족한 기량을 상대와 부딪히면서 극복했죠. 투쟁심이 강했어요.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든 슈팅하려고 했고요. 지금은 다릅니다. 대다수 선수의 머릿속엔 ‘패스’가 우선이에요. 

패스요?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슈팅을 시도해야 합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잖아요. 그런데 슈팅할 위치에서 패스를 선택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과감하게 상대와 부딪히면서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도 약해졌고요. 보기 좋은 축구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얌전해지는 거죠. 

얌전해진다는 게 어떤 의미죠?

짧고 빠른 패스로 오랜 시간 공을 소유하면서 상대를 압박해 나아가는 축구 좋습니다. 그런데 축구엔 답이 없어요. 우리가 준비한 축구가 안 통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땐 힘과 높이를 앞세운 축구를 구사해서 승리를 가져와야 해요. 단순한 축구가 기술적인 축구를 이기는 날도 있습니다. 선수들은 다양한 전술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뚜렷한 강점이 있어야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황선홍 감독은 선수 시절 기술과 투쟁심을 두루 갖춘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결정력뿐 아니라 주변 동료를 활용하는 데 능했어요.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승리를 가져오곤 했죠. 여러 축구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선수들에게 팀을 위해 뛰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희생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선수가 많다”고 합니다.

음... 제가 선수로 뛸 땐 감독이나 선배의 말은 법이었어요. 감독이 무언가를 시키면 해야만 했습니다. 이젠 아니에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할 수 없어요. 개인의 가치를 높이면서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쉬운 게 아니죠.


“가장 성실했던 선수? 신진호, 이명주가 먼저 떠올라”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조금 더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선수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요.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하지 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뛰어라. 그리고 네 가족을 생각하라”고 하죠. 다른 예도 있습니다. 선수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요. 좋은 차를 타고 넓은 집에서 사는 걸 목표로 하는 선수들이 있죠. 그 선수들에겐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하지 않냐. 네가 돈을 벌 방법은 하나다. 축구를 잘해서 국외로 나가라. 팀에서 네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겠다. 믿고 해보라”고 하죠. 

아하.

개개인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모든 축구 선수가 국가대표를 꿈꾸지 않아요. K리그엔 중동 진출이 축구 인생 최대 목표인 선수가 많습니다. 그게 틀린 건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단, 중동에서 돈을 벌려면 능력을 증명해야 해요. 국가대표가 아니면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방법뿐입니다.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줘서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동시에 팀의 발전을 꾀해야 하고요. 

선수 개개인의 성향과 목표 등을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네요. 

1월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U-23 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런 얘길 했어요. “너희들 선배인 (손)준호가 중국 슈퍼리그에서 얼마를 받는지 아느냐.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웨이트 트레이닝 30분 할 거 10분 더해라. 그렇게 조금씩 늘려나가라. 그러다 보면 매년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가 될 수 있다. 거기서 더 노력하면 유럽에서 수백억 원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뛰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확실합니다.

현실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선수들이 이해해요.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선택은 선수의 몫이에요. 한 번 이야기하면 달라지는 선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 번 얘기해도 안 바뀌는 선수가 있어요. 세 번 얘기해서 달라지지 않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바뀌기 어렵다고 보는 거죠. 특히나 대표팀은 클럽과 달리 훈련 시간이 길지 않아요. 짧은 시간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선수 개인에게 신경 쓸 시간이 많지 않은 거죠.

감독은 23명 이상의 선수를 각각 신경 써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입니까.

소통이죠. 지도자는 선수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2021년 11월 경주 전지훈련이었어요. (홍)명보에게 연락했습니다. (오)세훈이 좀 꼭 보내달라고 했죠. 훈련 많이 안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대화가 하고 싶었어요. 세훈이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저와 같은 스트라이커이기 때문에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으로 봤고요.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달라지는 선수가 많습니까.

많죠. 하나를 얘기하면 둘을 바꿔내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기특해요. 놀랍기도 하고요. 한국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훨씬 더 성장할 선수가 많습니다. 내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위해서 좋은 일이잖아요. 한국에서 재능을 꽃피는 선수가 늘어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싶습니다. 

많은 선수를 지도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선수 중 가장 성실했던 선수는 누구입니까.

열심히 하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어서... 다른 선수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웃음). 음. 바로 떠오른 선수는 (신)진호랑 (이)명주입니다. 포항에서 함께했었죠. 둘은 꾀가 없어요. 정말 열심히 합니다. 100을 시키면 120을 해내요. 제가 “얘들아, 너희는 살살 해라. 그러다 다친다”고 했던 선수들이에요. 특별한 말을 안 해도 팀 훈련 마치면 개인 운동을 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살다시피 하고요. 오래도록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황선홍 감독의 조언 “선수의 가치는 현재로 평가한다”

2019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이강인(사진 오른쪽)(사진=대한축구협회)
2019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이강인(사진 오른쪽)(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 U-23 축구 대표팀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는 이강인입니다. 황선홍 감독은 2월 스페인에서 이강인의 경기를 챙겨봤습니다. 만남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강인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 조커로 출전하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강인이는 아직 어려요. 지금보다 성장할 수 있는 재능입니다. 강인이에게 강조한 게 있어요. 선수에게 과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강인이가 2019 U-20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어요. 대회 골든볼도 받았죠. 지나간 일이란 거예요. 선수의 가치는 현재가 정합니다.

아.

저는 1988년 12월 6일 일본전에서 A매치에 데뷔해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습니다. 오랜 시간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과거의 기량 때문이 아니었어요. 저는 매 순간 온 힘을 다했습니다. 지금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했어요. 사실 이 얘긴 2019 U-20 월드컵을 뛰었던 모든 선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2019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에 앞장섰던 선수들을 생각해보세요. 현재 소속팀에서 빼어난 기량을 보이는 선수가 몇이나 됩니까.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그 선수들은 성장이 굉장히 더뎌요. 소속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대표팀에서 뛴다고 다르겠습니까. 아니거든요. 2019 U-20 월드컵은 지나간 대회입니다. 더 나아가려면 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경기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강인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강인이도 공감하더라고요. 강인이는 큰 부담을 느낄 거예요. 국민이 지켜보는 선수잖습니까. 강인이가 지금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단, U-23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팀에 꼭 필요하다는 걸 증명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어요. 어떤 선수든 대표팀 발탁이 당연한 이는 없습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표=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표=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이강인을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합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초심’입니다. 초심을 찾아야 해요. 주말마다 강인이 경기를 챙겨봅니다. 지금은 너무 조급해요. 짧은 시간 자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불필요한 드리블이 늘어나고 있죠. 무리하게 상대 선수와 부딪혀서 반칙을 범하고요.

이강인이 간결하게 플레이하지 못하는 건 여러 지도자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지도자의 눈은 비슷합니다. 여러 지도자가 지적한다는 건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강인이는 바꿀 능력이 있습니다. 팀 공격 속도를 살리는 데 앞장설 수 있어요. 그러니까 국내·외에서 같은 지적이 나오죠. 강인이는 생각이 빠른 선수입니다. 유럽 최고 리그에서 뛸 기본기와 기술을 갖춘 선수예요. 

이강인이 뛰고 있는 레알 마요르카가 2021-2022시즌 스페인 프로축구 2부 리그로 강등될 위기입니다. 

강인이가 20분 이상은 뛰고 있습니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해봤으면 해요. 강인이가 모든 걸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드리블, 패스, 골까지 다 노릴 필요 없어요. 불필요한 볼 터치부터 줄여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표팀에 합류하면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볼 계획이에요. 막힌 부분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U-23 대표팀에 합류할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경기장에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감하게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좋아요. 실패해도 됩니다. 그렇게 도전해야 득점 기회가 늘어납니다. 실수했으면 한 발 더 뛰면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가 출전 기회를 잡을 겁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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