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날린 안치홍(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13일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날린 안치홍(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대전]

“사직야구장이 워낙 크니까…사직 빼고는 (담장을) 넘어가더라고요.”

5월 13일 대전 원정에서 통산 6호 만루포를 날린 롯데 자이언츠 안치홍의 말이다. 안치홍은 이날 시즌 5호 홈런을 날려 한동희(7홈런)에 이은 팀 내 홈런 2위로 올라섰다.

안치홍의 홈런 기록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홈구장 사직야구장에서는 아직 한 개의 홈런도 때리지 못했다. 5개 홈런이 모두 원정경기에서 나왔다. 수원에서 3개, 대구에서 1개, 대전에서 1개를 날렸다. 기록만 보면 안치홍은 홈과 원정에서 완전히 다른 타자였다. 지난해만 해도 안치홍은 홈에서 6홈런, 원정에서 4홈런으로 사직 홈런이 원정보다 많았다.

안치홍만 이런 게 아니다. 5월 14일 현재까지 롯데 타자들은 홈구장 홈런 7개로 10개 팀 가운데 홈경기 최소홈런 2위(두산 1위)다. 반대로 원정경기에선 홈런 17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렸다. 롯데 타자들의 장타력이 부족해서 홈런이 적은 게 아니라, 사직 홈구장이 커서 나오는 결과다.

롯데는 올시즌을 앞두고 사직야구장을 대대적으로 갈아엎었다. 홈플레이트를 뒤로 물리고 외야를 넓혔다. 홈플레이트에서 좌우 펜스까지 거리가 95m에서 95.8m로 길어졌고, 가운데 담장까지 거리도 118m에서 120.5m가 됐다. 

펜스 높이도 4.8m에서 6m로 높였다. 담장 위에 철제 그물망을 설치해 ‘사직몬스터’를 만들었다. 높아진 담장을 가리켜 사람들은 성민규 단장의 이름을 따서 ‘성담장’이라 부르고 있다. 

‘성단장’ 효과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지만, ‘성담장’ 효과는 확실하다. 지난해 사직야구장 홈런팩터는 1021로 대구, 창원, 인천 다음으로 높은 홈런팩터를 자랑했다(스탯티즈 기준). 반면 올해 사직의 홈런팩터는 769로 리그 최소다. 홈런친화 구장에서 1년만에 투수친화 구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롯데의 홈구장 공사는 타선과 투수진 특성을 고려한 변화다. 롯데 선수 구성을 보면 홈런타자보다 라인드라이브 위주의 컨택트 히터가 많다. 팀의 방향성도 홈런보다 타율과 출루율, 중장거리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 한때 포크볼 투수, 땅볼 투수가 많았던 롯데 투수진은 점점 하이볼 투수와 뜬공 투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롯데 선수 구성에서 홈런이 잘 나오는 홈구장은 홈팀에는 불리하고 상대팀 타자들만 즐겁게 해줄 가능성이 컸다. 실제 작년 롯데 투수들은 홈에서 가장 많은 피홈런(72개)을 맞았고 홈구장 평균자책도 5.73으로 꼴찌였다. 롯데는 구장을 넓혀 투수들의 부담을 줄이고, 기동력과 수비력 중심의 야구를 하는 게 팀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 계산했다.

철망 펜스 추가 설치로 6m까지 높아진 사직구장 외야 담장(사진=롯데)
철망 펜스 추가 설치로 6m까지 높아진 사직구장 외야 담장(사진=롯데)

14일 현재 롯데의 홈경기 평균자책은 3.70으로 리그 4위다. 지난해보다 홈구장 평균자책을 2점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작년 최다였던 홈구장 피홈런은 현재 7개로 리그 최소다. ‘성담장’으로 확실한 투수진 업그레이드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작년 같으면 홈런이 됐을 타구가 올 시즌엔 담장에 맞고 단타, 2루타가 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물론 롯데 타자의 홈런타구를 잡아먹을 때도 있지만, 한두 장면이 아닌 시즌 144경기 전체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투수들이 누리는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을 생각하면 홈런 몇 개 사라지는 건 손해도 아니다.

안치홍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그는 “(담장) 때문에 타자들이 불리하다는 생각은 정말로 조금도 안 갖고 있다”면서 “어차피 상대팀도 똑같은 거니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치홍은 “이게 넘어갔다면 우리에게 흐름이 왔을 텐데 싶은 순간도 있지만, 상대방 타구가 안 넘어가면서 흐름이 끊어질 때도 있다. 유리하다,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경기에 임한다”고 밝혔다.

안치홍은 “원정 경기에서 경기전 타격연습을 해보면 확실히 다르긴 하다. 사직 담장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체감이 된다”고 했다. 단 홈과 원정에서 타격 어프로치를 다르게 가져가지는 않는다고. 그는 “내가 좋았을 때 어떻게 공에 반응했는지를 주로 생각한다. 매끄러운 타격 반응과 움직임을 생각하며 임한다”고 밝혔다.

홈구장에서 홈런 치기가 힘들면 원정 경기에서 치면 된다. 성담장 없는 원정에서 안치홍은 5홈런, 한동희도 4홈런, DJ 피터스도 4개의 홈런을 날렸다. 지시완이 때린 2개의 홈런도 원정에서 나온 홈런이다. 홈에서는 안 넘어갈 각도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라인드라이브 히터들이 원정 경기에서 많은 홈런을 치고 있다.

성담장을 설치한 올 시즌 현재 롯데 타자들은 팀홈런 24개로 리그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작년 꼴찌였던 팀 평균자책은 올 시즌 3.15로 리그 1위가 됐다. 그리고 롯데는 전문가들의 하위권 예상을 비웃듯 5할 승률과 4위를 유지하며 가을야구에 도전하고 있다. ‘성담장’ 효과, 현재까지는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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