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교 최대어 심준석이 미국행을 확정지었다(사진=스포츠춘추 DB)
올해 고교 최대어 심준석이 미국행을 확정지었다(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도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오랜 꿈을 택했다. 2023 신인드래프트 최대어 심준석이 마지막 순간 미국행을 확정지었다. 아직 꽃길일지 가시밭길일지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일생일대의 도전을 시작했다. 

심준석은 8월 16일 자정 KBO 신인드래프트 참가신청 마감 시간까지 참가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KBO는 선수의 해외 진출 의사를 명확히 파악해 구단의 지명권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신청제를 도입했다. 신청서를 내지 않은 심준석은 KBO리그 구단의 지명 대상에서 자동으로 제외됐다. 

심준석의 미국행은 올해 드래프트 최고의 핫이슈였다. 1학년 때부터 156km/h 강속구를 던져 국내 프로팀은 물론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모았고 지난해에는 ‘심준석 리그’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야구팬들은 작년 최하위 팀이 올해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받아 심준석을 지명하게 된다는 의미로 9위 KIA와 10위 한화의 꼴찌 경쟁에 심준석 이름을 붙였다. 일부 자칭 팬들이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향해 고의 패배를 요구하는 DM을 보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심준석은 1학년 때부터 일관되게 메이저리그를 향한 꿈을 이야기했다. 2년전 인터뷰에서 그는 뉴욕 메츠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을 롤모델 삼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 그 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 진출이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KBO리그를 거쳐 미국에 가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보장된 길을 제시했지만, 심준석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남들 말만 듣고 꿈 포기할 수 없었다…될지 안될지 몰라도, 죽기살기로 부딪혀야죠”

김민기 코치 앞에서 피칭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DB)
김민기 코치 앞에서 피칭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DB)

드래프트 불참이 확정된 17일 저녁 스포츠춘추는 전화 통화로 심준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많이 힘들지 않았나’라는 첫 물음에 심준석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미국행 확정 소감으로는 “기분은 괜찮다.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다”며 홀가분한 심정을 전했다.

결국엔 미국행을 택할 거면서 왜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미뤘는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어쩌면 야구 인생이 걸린 중요한 선택인 만큼 결코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준석은 “(KBO리그에) 남아야 할까라는 생각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꿈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려운 도전을 택한 이유에 관해 심준석은 “메이저리그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너라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하면서 더 열심히 야구하게 됐다”면서 “물론 힘들 거라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잘해서 그 선입견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여러 소문에 대해서는 “듣지 않으려 해도 계속해서 들리다 보니,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심준석은 “미국에 가서 열심히 하면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나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피지컬이나 구속에서 미국 선수들에 비해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더 열심히 운동하고 몸도 잘 만들어서,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남들의 ‘미국 직행은 힘들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에 내 꿈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일단 부딪혀 보자고 생각했다. 여기서 안 된다고 끝은 아니니까, 죽기살기로 한번 도전해보자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미국 무대를 향한 심준석의 의지는 예상보다 훨씬 더 확고했다. 

코로나19 악재, 부상 등 고난 속에서 메이저리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DB)
코로나19 악재, 부상 등 고난 속에서 메이저리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DB)

아쉽게도 올 시즌 심준석은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100% 발휘하지는 못했다. 지난해부터 팔꿈치 통증, 허리 통증 등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최근에는 왼쪽 엄지발가락 피로골절로 대통령배 대회 도중 하차하는 등 정상 컨디션으로 등판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도 겪었다. 덕수고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팀 훈련은 물론 충분한 실전 경험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학년 때까지 보는 이 없는 경기장에서 야구하다 3학년인 올해 갑자기 많은 취재진과 스카우트 앞에서 큰 부담을 안고 던지는 것도 만 18세 어린 선수에게는 난관이었다.

이에 관해 심준석은 “허리 부상 이후 오래 쉬다 보니 (감을) 찾는데 약간 시간이 걸리긴 했다”면서도 “앞으로 더 몸 관리에 신경쓰고,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남들도 다 겪은 코로나19나 사람들의 관심이 주는 부담에 대해서는 핑계로 삼지 않았다.

나이 어린 선수에게 자칫 상처일 수 있는 ‘제구력 불안’ 지적은 어떻게 생각할까. 올해 심준석은 12경기 20.2이닝 동안 22개 볼넷과 12개의 몸에 맞는 볼을 허용했다. 하지만 1학년 때만 해도 심준석은 결코 제구력 나쁜 투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교 투수 중에는 최상위권 제구력을 자랑했다. 

2년전 한 프로 스카우트는 “150km/h 강속구를 몸쪽 바깥쪽으로 코너워크해서 던진다. 변화구 제구력도 안정적”이라며 1학년 심준석의 컨트롤을 칭찬한 바 있다. 1학년 시즌 심준석은 8경기 19이닝 동안 볼넷 9개, 몸 맞는 볼 2개에 삼진 32개를 기록했다. 메커니즘에 문제가 있거나 제구력이 나쁜 투수에게선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심준석도 “내가 제구가 나쁜 투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3학년 때 주춤하긴 했지만 부상 전까지는 괜찮았다. 그래서 그런 말에는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다시 제구력을 되찾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올해 공식경기 최고구속 157km/h, 비공식 연습경기 160km/h를 기록한 건 분명한 성과다. 나오는 경기마다 155, 156, 157km/h을 꾸준히 던지는 심준석의 피칭은 노력으로 도달 가능한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재능이다. 올시즌 부진에도 한화가 마지막까지 심준석을 ‘1순위’로 고려한 이유도 이 천재성에 있다.

심준석은 이에 관해 “아무래도 최고구속이 160km/h까지 나왔으니까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마냥 기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런 공을 실전에서도 던지고 싶다, 실전에서 이렇게 던져야 하는데…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고 솔직한 답을 들려줬다.

“팬들이 보내주신 응원 메시지에 감동…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심준석은 올해 비공식 최고구속 160km/h를 기록했다(사진=스포츠춘추 DB)
심준석은 올해 비공식 최고구속 160km/h를 기록했다(사진=스포츠춘추 DB)

심준석이 발가락 부상으로 하차한 다음날, 에이스가 빠진 덕수고는 대통령배 8강에서 안산공고에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오늘부터 열리는 봉황대기 대회에도 심준석은 나오지 못한다. 이와 관련 심준석은 덕수고 동료와 후배들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아서 대회 중에 빠지게 됐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미안하다고 얘기했더니 팀원들이 다들 괜찮다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어떡하겠어’라고 하더라. 그 얘길 듣고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에 대해서도 “1학년 때부터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드래프트 불참이 확정된 뒤 심준석은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많은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그중에는 한화 팬들이 보낸 메시지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의외로 한화 팬들께서도 많은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너무 감동했고 감사드린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훗날을 기약했다.

심준석은 발가락 부상이 회복되는 대로 미국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은 정하지 않았다. 심준석은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남은 시즌 부상 없이 몸을 잘 만들어서 준비하도록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내는 게 지금 내 목표”라고 각오를 밝혔다. 전부를 건 심준석의 도전이 지금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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