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실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권봉안 한국체대 대학원장(사진=한국체대)
2019년 5월 20일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실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권봉안 한국체대 대학원장(사진=한국체대)

[스포츠춘추]

‘훈장’ 받은 교수가 사라졌다. 훈장 받기 전엔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던 유명 교수다.

서울 모 대학의 체육학과 교수는 이 교수를 “체육학계의 거목 중 거목”이라고 추켜세운 뒤 “그토록 유명한 교수였지만, 지금은 그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체육학계의 거목 중 거목이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교수. 바로 권봉안(67) 전 국립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다.

29살에 교수 돼 탄탄대로를 달렸던 체육학계 거목, 권봉안 한국체대 교수

2011년 지역 수상스키&웨이크보드협회장 취임식에 참석해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권봉안(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전 한국체대 대학원장
2011년 지역 수상스키&웨이크보드협회장 취임식에 참석해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권봉안(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전 한국체대 대학원장

2009년 모 언론사 기사에 따르면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는 국가대표 유도 선수 출신이다. 그가 학자로 변신한 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 부상을 당하면서다. 부상으로 메달의 꿈을 접은 권 전 교수는 학업에 몰두해 1984년 한국체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이후 권 전 교수는 학교보건담당 교과목 교수와 안전관리학과 교수 등을 차례로 맡으며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2011년엔 생활체육대 학장, 2015년엔 대외협력단 단장, 2018년부터 2019년까진 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체대를 대표하는 교수가 됐다.

모 대학 체육학과 교수는 “권 전 교수가 대외활동에도 매우 열심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대한체육회 이사, 한국안전교육학회장. 한국노인체육복지학회장 등을 두루 맡은 체육학계의 대표적 마당발이었다. 불교계에도 아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특히나 경찰 인맥이 두터웠다. 한때 ‘왜 저런 사람이 한국체대 총장이 못 될까’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도 권 교수가 원체 대외활동을 통해 다져놓은 인맥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권 전 교수는 2019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대학발전과 후진양성, 저술 활동 등에서 헌신한 공을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2020년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당시 한국체대는 훈장 수훈 사유로 ‘교육자로서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로 후학을 양성해온 공로’를 들었다.

2020년 2월을 끝으로 한국체대에서 정년퇴직한 권 전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 그곳 대학에서 학자의 삶을 계속 이을 것으로 예상됐다.

학회 활동을 함께했던 A 교수는 “본인이 ‘미국 대학에서 건강증진 연구를 계속 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나 말고도 그렇게 들은 교수가 많은 걸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권 전 교수는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 대학에 가지 않았다. 권 전 교수의 제자는 “미국 대학에 가셨다면 지금도 우리와 연락이 닿을 거다. 하지만, 2020년 5월 이후 교수님과 통화했다는 제자는 고사하고, 행방을 아는 제자도 거의 없다. 교수님과 연락이 끊긴 제자들 사이에선 ‘증발이라도 된 게 아니냐. 실종 신고라도 내야 하지 않나’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났다.

성공한 학자인 권 전 교수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갑자기 사라진 ‘체육학계 거목’, 미국에 있다?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는 각종 방송 매체에 출연하면서 '건강 전도사'로 유명세를 탔다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는 각종 방송 매체에 출연하면서 '건강 전도사'로 유명세를 탔다

“권봉안 교수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권 전 교수와 막역한 사이인 B 교수는 “2020년 5월 이후 권 교수가 미국에 있다”며 “권 교수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던 중 황급히 미국으로 떠났다”고 귀띔했다.

취재 결과 사실이었다. 권 전 교수는 2020년 5월 중순, 서울 모 경찰서 출석을 이틀 앞두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현재 그의 신분은 단순 출국자가 아닌 기소중지자다.

취재 중 만난 체육계 관계자는 “권 전 교수가 한국에 있던 2020년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고 알렸다.

“수사 당시 권 전 교수가 제자들의 한국체대 박사과정 입학과 지도교수 선정, 논문심사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게 경찰 판단이었다. 권 전 교수에게 금품을 전달한 제자들이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면서 권 전 교수가 코너에 몰렸다. 학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목소릴 높였지만, 정작 권 전 교수가 택한 건 그 반대인 도주였다.”

취재를 종합하면 권 전 교수는 한국체대 건강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사과정은 물론 석사, 박사과정에서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입학 시험문제 출제와 연구활동, 논문심사를 총괄한 권 전 교수는 이런 지위를 악용해 석·박사 입학과 지도교수 선정 대가로 제자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경찰 수사 결과 박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박사 논문 통과 대가로 많게는 수천만 원의 금품을 요구해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건강교육학 박사과정에 최종 합격한 C 씨는 경찰 조사에서 “권 전 교수에게 1천만 원의 입학 사례금을 주기로 했다가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읍소해 300만 원을 깎았다” “권 전 교수의 연구실에서 ‘입학대가금’ 명목으로 700만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비슷한 시기 C 씨 역시 권 전 교수에게 뇌물을 줬다. C 씨에 따르면 권 전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던 제자들에게 “논문연구계획 발표일에 논문심사비 명목으로 300만 원씩, 심사 때도 심사위원들 식사비 명목으로 3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C 씨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돈을 나눠 내기로 했고, 결국 200만 원을 인출해 논문심사비 명목으로 권 전 교수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체대가 국립대인 까닭에 권 전 교수는 교육공무원 신분이었다. 경찰이 이 사건을 집중해 수사한 것도 권 전 교수가 교육공무원 신분으로 뇌물을 수수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스승이 요구해 금품 준 제자들은 모두 처벌. 제자들로부터 금품 받은 스승은 미국으로 도주…“더 큰 사건에 연루돼 귀국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소문 나”

모 언론사에 실린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 이야기 가운데 일부다. 권 전 교수는 연구 성과가 없거나 강의가 부실한 교수들을 '학원 범죄자'로 불렀다. 현재 권 전 교수는 뇌물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기소중지자'가 돼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모 언론사에 실린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 이야기 가운데 일부다. 권 전 교수는 연구 성과가 없거나 강의가 부실한 교수들을 '학원 범죄자'로 불렀다. 현재 권 전 교수는 뇌물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기소중지자'가 돼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권봉안 교수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던 D 씨는 “최소 6명 이상의 제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모두 권 전 교수에게 금품을 전달한 혐의였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더 많다”고 회상했다.

“그 사건으로 권 전 교수의 제자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권 전 교수가 요구해 돈을 줬을 뿐인데도 고초는 모두 제자들의 몫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유일하게 고초를 겪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권 전 교수다. 경찰에 출석해 ‘모두 내가 요구해 생긴 일’이라고 자백하는 게 스승의 도리였을 테지만, 권 전 교수는 스승의 도리를 다하는 대신 미국으로 도망갔다.” D 씨의 얘기다.

권 전 교수는 2020년 5월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훈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던 체육학계 거목의 말로치고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취재 중 만난 한 체육인은 “'권 전 교수가 귀국하고 싶어도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권 전 교수가 더 큰 사건에 연루돼 있어 그의 귀국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게 소문의 주된 내용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지난해 권 전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귀국이 불발됐다. 권 전 교수가 더 큰 사건에 연루된 게 맞다면 그 사건으로 권 전 교수가 예기치 못한 곤란을 겪을 수 있다. 권 전 교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수사 당국이 그의 소환을 위해 적극 노력했으면 한다.”

+ 제보를 받습니다. 권봉안 전 교수와 관련해 제보 주시거나 지도 교수로부터 금품 또는 향응을 요구받았던 경험이 있으신 분은 dhp1225@spochoo.com으로 연락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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