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해설위원(사진 왼쪽)과 장효조 전 감독(사진 오른쪽)은 삼성을 대표하는 교타자 레전드다(사진=삼성)
양준혁 해설위원(사진 왼쪽)과 장효조 전 감독(사진 오른쪽)은 삼성을 대표하는 교타자 레전드다(사진=삼성)

[스포츠춘추]

고(故) 장효조는 비교적 최근 들어 야구를 본 팬들에겐 다소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기록은 현 시대에도 많은 울림을 준다. KBO리그 창설 40주년 ‘레전드 40’ 반열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유다. 

장효조는 1983년 데뷔한 뒤 현역 10시즌 동안 3년 연속 타율 1위, 통산 4차례 타율왕, 5년 연속 출루율 1위에 올랐다. 장효조의 개인 통산 타율 0.331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이다. 현역 선수들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2022년 8월 12일 기준 통산 타율 0.340)가 그 대기록을 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을 정도로 천재 타자로 평가받은 장효조는 5번의 골든글러브(1983~1987)를 수상했고, 1987년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1993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다소 이른 현역 은퇴를 택했던 장효조는 롯데와 삼성을 오가면서 지도자 생활과 스카우트 업무를 소화했다. 2011년 삼성 2군 감독에 선임됐던 장효조는 그해 9월 7일 암 투병 끝에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삼성 중심 타선을 같이 나눠 맡아 활약했던 이만수 전 감독은 현역 시절 장효조의 추억을 꺼내면서 ‘시대를 앞섰던 타자’라고 평가했다. 

다시 나오기 힘든 한국 타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현역 활동 시절인 1980년대를 생각하면 타격 기술 자체가 남달랐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 타자가 도끼 스윙이라고 내려찍는 다운스윙을 주로 했다. 그런데 (장)효조 선배는 지금 이정후 선수처럼 기술적인 레벨스윙을 그때 이미 보여줬다. 타구도 부채꼴 모양처럼 좌·우로 자유롭게 보낼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타자였다.” 이만수 전 감독의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한 양신과 장효조의 인연 "내 야구 인생을 만들어주신 분"

1980년대 삼성 타선을 이끌었던 이만수 전 감독(사진 왼쪽)과 장효조 전 감독(사진 가운데)(사진=삼성)
1980년대 삼성 타선을 이끌었던 이만수 전 감독(사진 왼쪽)과 장효조 전 감독(사진 가운데)(사진=삼성)

MBC SPORTS+ 양준혁 해설위원도 장효조와 더불어 삼성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타자 레전드다. 양 위원은 “내 마음 속에선 장효조 선배가 ‘레전드 40’ 1위다. 그만큼 시대를 앞섰던 타격관을 보유하셨던 분인 데다 내 야구인생까지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바라봤다. 

양 위원과 장효조의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 ‘대스타’였던 장효조의 활약을 보고 자란 양 위원은 대구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한 첫 해 장효조를 학교 운동장에서 만났다.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때였다. 장효조 선배가 야구부 감독님과 인연이 있어서 잠시 인스트럭터로 학교에 찾아오셨더라. 그때 장효조 선배가 훈련하는 나를 보더니 감독님에게 ‘이 친구는 실력이 뛰어나니까 꼭 키워야 할 선수’라고 말씀하셨다. 그 덕분에 나는 4번 타자 자리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그때 장효조 선배에게 타격 기술도 많이 배운 덕분에 기본기가 잘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양 위원의 말이다.

장효조 전 감독과 양준혁 위원의 KBO리그 타격 관련 통산 기록(표=스포츠춘추)
장효조 전 감독과 양준혁 위원의 KBO리그 타격 관련 통산 기록(표=스포츠춘추)

양준혁 위원과 장효조는 공통점이 많다. 삼성 프랜차이즈 출신에다 좌타자로서 정교한 타격 능력을 자랑하면서 각각 통산 네 차례 타율왕을 차지했다. 최근 중요하게 평가받는 선구안과 출루율 능력도 동시에 갖춘 시대를 앞선 타자들이었다. 양준혁 위원이 현역 시절 등번호 10번을 택한 이유도 장효조의 등번호인 까닭이었다. 

KBO리그 40년 통틀어 장효조 선배의 타격 기술을 따라갈 선수가 있었을까. 그나마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수는 이정후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장효조 선배와 견줄 만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장효조 선배는 1, 2cm 차이라도 공을 골라내는 게 가능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그만큼 출루와 선구안이 대단하셨다. 나도 타석에서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내가 홈런보다 출루에 더 특화한 통산 기록이 나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내 마음속에선 레전드 1위" 양신이 잊지 않은 장효조의 위대함

2011년 삼성 2군 감독으로 다시 친정에 돌아온 장효조 전 감독은 암투병 끝에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사진=삼성)
2011년 삼성 2군 감독으로 다시 친정에 돌아온 장효조 전 감독은 암투병 끝에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사진=삼성)

장효조가 양준혁 위원의 야구 인생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요소도 있었다. 바로 현역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림이다. 장효조는 1988시즌 종료 뒤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돼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1992시즌 종료 뒤 현역 은퇴를 택했다. 하지만, 양 위원은 선수 생활 중간 트레이드로 다른 팀으로 잠시 건너갔다가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최동원 선배도 그렇고 장효조 선배도 그렇고 현역 마지막 순간엔 친정 팀이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아쉬운 마음으로 은퇴를 하셨다. 그걸 생각하니까 나는 꼭 삼성 유니폼을 입고 은퇴해야겠단 생각이 들게 되더라. 사실 내가 은퇴했을 때 구단에선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냥 삼성에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양 위원의 말이다.

장효조는 이번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40’ 선정 전문가 투표에서 144표(73.85점), 팬 투표에서 49만 154표(8.97점)을 얻어 총 점수 82.82로 40명의 레전드 가운데 6위에 올랐다. 이 순위와 관계없이 양준혁 위원은 “내 마음속에선 장효조 선배가 레전드 1위”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삼성과 등번호 10번, 그리고 시대를 넘나든 두 레전드의 인연은 KBO리그 40주년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장효조 선배가 지도자로 삼성에 돌아오셨을 때는 2군에 주로 계셔서 얼굴을 자주 뵙진 못 했다. 그 시간을 돌이키니 너무 아쉽다. 정말 삼성을 사랑하셨던 분인데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에서라도 40주년 레전드 트로피와 함께 환하게 웃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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